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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삶읽기/인생읽기

“한 걸음, 한 삶 – 실버 택배가 전해준 것은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by 소산데일리 | Sosan Daily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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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 ‘실버 택배’라 불리는 이들이 전하는 건 단순한 물건이 아닌, 존재의 가치였습니다.

 

“한 걸음, 한 삶 – 실버 택배가 전해준 것은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도심의 골목 사이,  
하얀 머리칼이 햇빛을 머금은 채 걷습니다.  
그 걸음은 빠르지 않지만, 결코 느리지도 않죠.  
뒷짐 진 노년이 아닌, 앞장서 걷는 ‘현재’의 사람들.  
이들은 ‘실버 택배’라 불리는 백발의 배달원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퀵서비스이지만, 그 하루는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서류 한 장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물건 하나하나를 세 번 포장합니다.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글은, 단순한 배달이 아닌 ‘삶’을 나르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느린 걸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조용한 질문,  
그 의미를 함께 따라가봅니다.

하루 3만 보, 의미를 나르는 발걸음

서울의 지하철.
누군가는 피곤에 겨워 졸고,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다음 정거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칸에선,
70대의 택배원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지도 앱을 켜고 걷고, 또 걷는다.

4kg짜리 페인트통, 유골함, 인감도장, 영정사진.
무게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 손에 들린 것은 늘 조심스럽고 소중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 나이에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그들은 웃으며 답한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

어느 날, 은퇴 후 매 끼니를 챙겨 먹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말했다.
“당신, 삼식이 되는 거야?”

그 말이 걸렸다.
그날부터 그는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고,
서울에서 충남까지 배달을 한다.
가방 안에는 물건, 그리고 마음.

택배는 핑계일 뿐이었다.
진짜 목적지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그러나 누구보다 뜨거운 하루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79세 배달원.
30년 일한 회사를 IMF 때 그만두고
이제는 근조기를 들고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버스에서 거절당할 때도 있지만,
그는 담담히 말한다.
“나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필요하니까요.”

누군가는 '그 나이에 무슨 퀵이냐'며 코웃음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이 아직 걷고 있다는 걸.

하루가 끝나고, 남은 것은

한 어르신은
손녀의 결혼식에 500만원을 모았다.
일당 2만원에서 교통비, 식비를 빼면 남는 건 몇 천 원.
그 돈을 아껴 모은 것이다.

“60년을 일했지만,
지금이 제일 보람 있습니다.”

그 말은 슬프지도,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냥 진실이다.
묵직한 하루의 끝에서,
자신이 보낸 하루를 후회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의 말.

우리가 지금 나르는 건 무엇인가

그들은 물건을 나른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신뢰, 책임, 인간다운 품위를 나른다.

그 손에 들린 건 서류 봉투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마지막 이별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들의 하루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조용한 질문

그들은 누구보다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노인이 된다는 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늙어도 걷는다. 이유가 있어서.”

묻고 싶다.
오늘 우리도 어떤 가치를 배달하며 살고 있는지.
지금 내 걸음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들의 하루는
그저 배송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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